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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21 [역사이야기] 정조대왕, 새로운 신도시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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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새로운 신도시를 꿈꾸다.
조선제 22대 임금 정조대왕은 4대 세종대왕과 더불어 조선을 대표하는 성군으로 손꼽힌다. 18세기 정조대왕에 의해 축조된 화성은 그의 애절한 효심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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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3호인 화성(華城)은 당쟁의 회오리 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사도세자를 아들인 정조대왕이 수원의 화산(華山)으로 옮긴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당쟁으로 인해 28세의 나이로 뒤주 속에서 참혹하게 죽고 만다. 정조는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의해 뒤주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이를 슬퍼해 왔다.

훗날 조부 영조 뒤를 이어 즉위하자 그는 부친의 고혼을 위로하기 위해 양주 땅 배봉산에 묻혀있던 아버지의 유해를 수원 남쪽 화산으로 천봉하였다. 그리고 묘를 옮긴 5년 후에 성곽을 축성하게 된다. 정조가 신도시 화성을 세운 명분 중의 하나가 바로 현륭원(사도세자의 묘)의 보호에 있는 것이다. 바로 이곳을 자신이 이상으로 꿈꾸는 신도시로 건설하고자, 당시 정조는 ‘아버지의 묘가 여기(수원) 있으니, 내가 왕에서 물러난 후에 이곳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러한 명분과 함께 정조는 화성을 기반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반대했던 노론세력을 누른 다음, 정치개혁을 이루려고 했던 야망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정조 18년(1794)에 축성공사를 시작, 2년 뒤인 1796년에 완공했다.

당시 정약용이 설계하고 벽돌과 거중기를 사용한 점 등은 과학과 건축, 예술을 통틀어 우리나라 성곽건축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세기 후반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신도시 건설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열풍이 불기 훨씬 전인 150여 년 전, 이미 우리나라에 계획적으로 세워진 신도시가 있었으니, 바로 수원 화성이다.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계획된 신도시, 수원 화성. 화성은 조선후기 성곽 건축의 최대 걸작품으로도 손꼽히고 있다. 당시 화성 축조에는 정조대왕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담겨있다고 하는데...  정조대왕이 꿈꾸던 새로운 신도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나라 성곽건축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
‘기초를 튼튼하게 하라, 서둘러서 짓지 마라, 화려하게 만들지 마라’정조가 화성을 축조하면서 명령한 것이 크게 이 3가지로 요약된다.
화성의 축성에는 부친에 대한 효성이 밑바탕으로 깔려있지만, 정조의 마음은 새로운 사회의 변화를 꾀하면서 새로운 신도시 건설에 대한 야망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이 새로운 터전에 고을을 만들고 주민을 이주시켜 상업 활동을 적극 권장 하는 등 경제력을 갖춘 신도시를 건설하려는 면모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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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화홍문]


정조 자신이 신도시 수원에 내걸었던 '호호부실, 인인화락’이라는 말처럼 집집마다 부유하게 하고 사람마다 즐겁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립은 결국 수도를 보위하면서 국가 재정에도 보탬이 되는 도시의 기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즉, 정조는 이곳에 새로운 도읍을 만들어, 구세력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양과는 별도의 터전에서 신진세력들을 중심으로 개혁적인 정치를 펴려고 하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하게 된다.

그런데 수원 화성이 완성되고 나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49세의 한창 나이에 정조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정조 24년, 1800년) 그가 꿈꾸었던 신도시가 제대로 피워보지 못할 때, 맞이한 정조의 죽음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나의 거대한 성(城)처럼 만들어진 신도시
화성(華城)은 정조의 명으로 조성된 신도시의 이름이자, 도시 외곽을 둘러싼 성곽의 호칭이다. 이처럼 현재 수원은 하나의 거대한 성처럼 도시가 형성돼 있다. 수원에는 동서남북 방향에 4개의 성문이 있으며 서울을 향한 북문이 장안(長安)문, 반대 방향의 남문이 팔달(八達)문, 그리고 동서에 각각 창룡(蒼龍)문과 화서(華西)문이 있다. 이 가운데 장안문과 팔달문은 수원성의 남북 대문을 하는 구실을 하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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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장안문]


장안문은 서울을 향하여 북향하고 서 있으며, 장안문과 반대 방향에 남향하여 서 있는 팔달문은 규모나 형태가 장안문과 동일하다. 성 주변의 사방을 조망하면서 장병들을 지휘하는 곳으로 서장대와 동장대가 있다. 특히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는데, 성의 안팎이 모두 한 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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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장대]


서울에서 1~2시간 거리에 있는 수원은 교통도 무척 편리해 하루 탐방 코스로 다녀오기 좋다. 이번 방학, 수원 화성을 찾아 정조대왕의 꿈꾸었던 신도시의 면모도 살펴보고, 효의 정신도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
2007/12/21 14:55 2007/12/21 14:55